트럼프가 과학기술 자문단을 비전문가로 채우려 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의사, 변호사, 금융인. 이름만 들으면 각자 분야에서 나름 내로라하는 사람들이겠지만, 과학기술(STEM) 정책을 다루는 자리에는 영 어울리지 않는 이력들이다. Ars Technica 보도를 보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구성할 대통령 과학기술자문위원회(PCAST) 후보군에 과학기술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인물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자문단이 뭘 하는 기구인지부터
PCAST는 기후 변화 대응 전략, 인공지능 규제 방향, 팬데믹 대비 체계 같은 의제를 다룬다. 쉽게 말해, 대통령이 과학기술 관련 결정을 내릴 때 “이 방향이 맞나요?”를 물어볼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기구다. 전통적으로는 각 분야 최고 권위자들로 꾸려졌다. 노벨상 수상자, 저명한 공학자, 분야별 석학 같은 이름들이 주를 이뤘다.
트럼프 1기 때도 이 자리를 둘러싼 잡음이 있었다. 기후 변화에 회의적인 입장을 고수했고, 과학 자문 기구 예산 삭감, 전문가 배제 시도가 반복되면서 과학계와 마찰을 빚었다. 그 연장선에서 이번 인선 논란을 읽는 시각이 많다.
전문성보다 ‘코드’ 맞는 사람?
솔직히 이 부분이 핵심이다. 단순히 경험이 좀 부족한 사람을 앉히는 문제가 아니라, 과학적 사실보다 정치적 입장을 자문단 의견으로 포장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첨단 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한 지금, 비전문가가 이 자리에 앉으면 정책 품질이 떨어진다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양자 컴퓨팅 투자 우선순위, AI 윤리 기준 설정, 기후 모델링 기반 정책 결정 같은 문제들은 배경 지식 없이 상식선에서 판단하기 어렵다. 비전문가 자문단이 가져오는 문제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 단기 정치 효과 우선: 장기 과학 투자보다 임기 내 눈에 보이는 성과를 노린 결정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과학 분야 R&D는 성과가 10년, 20년 단위로 나오는데, 그 시간축을 정치 일정에 맞추려 하면 망한다.
- 국민 신뢰 하락: 과학적 근거가 빈약한 정책은 설득력을 잃는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미국 정부가 과학적 권고를 무시하면서 벌어진 혼란이 가장 직관적인 사례다. 이건 좀 과한 듯 싶어도, 실제로 그랬다.
- 국제 공조 이탈: 미국이 글로벌 과학기술 거버넌스에서 엇박자를 내면, 기후 협약이든 AI 안전 기준이든 주요 의제에서 미국의 발언권이 약해진다. 결국 혁신 동력 자체가 무뎌지는 구조다.
미국 얘기, 왜 한국 문제이기도 한가
미국의 과학기술 정책은 미국 안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반도체, 바이오, AI 등 첨단 기술 산업 비중이 큰 한국은 파급 속도가 빠르다. 시나리오별로 정리하면 이렇다.
- R&D 협력 위축: 미국이 고립주의적 과학 정책을 택하면 인공지능, 우주 탐사, 바이오 분야의 국제 공동 연구가 쪼그라든다. 국내 연구기관과 기업들이 공동 과제에서 빠지거나 자금줄이 끊기는 상황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이미 일부 미국 연방 펀딩이 외국 기관 참여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 기술 표준·규제 불확실성: 미국이 정하면 글로벌 표준이 되는 분야가 많다. AI 윤리 가이드라인, 탄소 배출 관련 기술 인증 등에서 미국이 과학적 합의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면 국내 기업들의 수출 전략과 기술 로드맵이 흔들린다. 기준이 바뀌면 인증부터 다시 받아야 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 과학 인재 흐름 변화: 미국 연구 환경이 나빠지면 인재들이 유럽이나 아시아로 눈을 돌린다. 한국 입장에서 유입 기회가 생길 수도 있지만, 반대로 국내 인재가 미국 대신 다른 경로를 택하면서 교류 자체가 줄어드는 시나리오도 있다.
미국 한 나라의 인선 문제가 왜 우리 얘기냐 싶겠지만, 기술 패권 경쟁은 이미 이 정도까지 얽혀 있다. 미국 외 협력 네트워크를 다변화하고, 자체 과학기술 생태계를 단단하게 다지는 데 집중해야 할 시점이다. 한쪽 축에만 기대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다.
출처: Ars Technic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