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바이든 정부 때 만든 발전소 온실가스 요건을 폐지하기로 최종 확정했다. 발전 부문에 남은 배출 한도도 모두 없애자고 제안했다.
- EPA는 온실가스 피해가 전 세계에 걸쳐 있고 불확실하므로 자신들이 규제할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확정한 규정만으로도 3,100억 달러를 아낀다고 밝혔다.
- AI 데이터센터와 전기차, 공장이 늘면서 전력 수요가 커지는 때라 전기가 더 더러워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환경단체들은 소송을 예고했다.
미국 발전소 온실가스에 걸려 있던 연방 정부의 상한선이 모두 사라지는 쪽으로 가고 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발전 부문에 남은 온실가스 배출 기준을 전부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아직은 제안 단계. 그래도 방향은 분명하다. AI 데이터센터와 전기차, 되살아나는 제조업이 한꺼번에 전기를 끌어다 쓰면서 전력 수요가 다시 늘고 있다. 그런 시점에 나온 발표라 반발도 그만큼 거세다.
더버지 보도에 따르면 이번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해 온 정책을 한 단계 더 밀어붙인 것이다. 정책의 골자는 화석연료 산업에 힘을 싣고, 전기를 많이 쓰는 데이터센터의 건설 문턱을 낮추는 데 있다. 여기까지는 보도된 사실이고, 이제부터는 해석이다. 미국 정부가 AI 인프라를 늘리려고 탄소 규제를 ‘치러야 할 비용’으로 보고 걷어내는 길로 한 발 더 들어섰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확정된 폐지 하나, 새로 꺼내 든 폐지안 하나
이번 발표는 성격이 다른 두 조치로 나뉜다. 하나는 바이든 정부 때 도입된 발전소 온실가스 요건의 폐지다. 이쪽은 최종 확정됐다. 다른 하나는 발전 부문에 남아 있는 배출 한도까지 전부 없애자는 새 제안이다. 둘을 뭉뚱그려 ‘규제 폐기’라고 부르기 쉽다. 하지만 절차가 끝난 것은 앞의 조치뿐이다. 뒤의 조치는 의견수렴을 앞둔 안이다.
시작은 지난 2월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때 자동차 온실가스에 대한 ‘위해성 판단(endangerment finding)’을 뒤집었다. 위해성 판단은 온실가스가 지금 세대와 미래 세대의 건강과 복지를 위협한다고 인정한 결론으로, EPA가 청정대기법에 따라 온실가스를 규제해 온 근거였다. EPA는 같은 논리를 이제 발전소에 가져다 쓰고 있다. 자동차에서 규제 근거를 먼저 허물고 발전소로 넘어왔다. 이 순서를 보면 이번 발표는 갑작스러운 결정이 아니다. 예고된 다음 수순에 가깝다.
| 대상 | 조치 내용 | 진행 단계 | EPA가 주장하는 절감 효과 |
|---|---|---|---|
| 자동차 온실가스 | 위해성 판단 철회 | 2월 철회 완료 | — |
| 바이든 정부의 발전소 온실가스 요건 | 요건 폐지 | 최종 확정 | 3,100억 달러 |
| 발전 부문에 남은 배출 한도 | 전부 제거 | 제안 단계(의견수렴 45일) | 직접 규제 준수 비용 3억 7,000만 달러 |
표에서 짚어둘 대목은 절감액이다. 확정 규정의 3,100억 달러와 새 제안의 3억 7,000만 달러는 규모부터 크게 다르다. 뒤의 숫자는 ‘직접 규제 준수 비용’으로 범위를 좁힌 수치이기도 하다. 두 금액을 같은 잣대로 비교하기 어려운 이유다. 두 금액을 어떻게 산정했는지는 이번 보도에 나오지 않는다.
미국 전력 수요가 10여 년 만에 늘기 시작한 시점에 풀린 규제
발전 부문이 미국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분의 1. 이보다 많이 내뿜는 분야는 교통 부문밖에 없다. 규제 효과가 가장 크게 나는 분야 중 한 곳에서 브레이크를 떼어내는 셈이다.
시기를 두고도 비판이 나온다. 데이터센터와 공장, 전기차가 잇따라 전력망에 연결되면서 미국 전력 수요는 10여 년 만에 처음 늘기 시작했고, 전기요금도 올랐다. 발전량은 늘어나는데 배출 기준마저 없어지면 그만큼 전기가 더 더러워진다. 비판론이 짚는 핵심은 이것이다.
리 젤딘 EPA 청장은 미국을 “세계 AI 수도”로 만드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젤딘 청장이 택한 방법은 규제 완화다. 데이터센터, 그리고 데이터센터에 전기를 대는 가스·석탄 발전소의 환경 규제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환경 규제를 맡은 기관의 수장이 산업 육성 목표를 맨 앞에 내세웠다는 점은 따로 짚어둘 만하다. 미국에서 에너지는 이미 생활비 부담을 둘러싼 정치 쟁점이 됐고, 이번 조치도 그 논쟁의 한복판에 놓였다.
EPA는 규제 대상이 아니라 하고, 환경단체는 건강 피해와 소송을 말한다
EPA는 보도자료에서 온실가스의 영향이 “전 세계에 걸쳐 있다”고 설명했다. 건강 피해가 생기더라도 “너무 불확실하고 추측에 가까우며 복잡해서 미국 발전 부문 탓으로 특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규제할 대상이 아니라는 게 EPA의 결론이다.
과학계의 합의는 반대다. 화석연료에서 나온 온실가스가 기후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 합의된 결론이다. 미국은 역사상 어느 나라보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했고, 지금도 중국 다음으로 많이 내뿜는다. 피해가 전 세계에 퍼져 있어 책임을 따지기 어렵다는 논리를 역사상 가장 많이 배출한 나라가 꺼내 들었다. 논란이 커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 EPA: 온실가스 피해는 전 세계에 걸쳐 있고 불확실해서 규제 대상이 아니다. 규제를 없애면 비용이 줄어든다.
- 환경단체 맘스 클린 에어 포스의 도미니크 브라우닝 대표(공동창립자): 기후 오염을 막지 않으면 천식 발작과 열사병으로 응급실에 가는 아이가 늘어난다. 폭풍이 지나간 뒤 집을 다시 지어야 하는 가족도 늘고, 의료비와 보험료도 오른다.
- 시에라클럽의 홀리 벤더 최고프로그램책임자: 법원과 의회, 지역사회에서 “가진 모든 것으로” 맞서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화석연료 업계에 “계속 오염해도 된다는 면허”를 내줬다는 비판도 했다.
새 폐지안은 45일 동안 공개 의견을 받는다. 소송도 여러 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규제 폐지가 이대로 굳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시에라클럽이 법원에서 맞서겠다고 밝힌 만큼, 이번 발표는 결론보다는 긴 공방의 시작에 가깝다.
한국 전기요금엔 당장 영향 없지만 흐름은 봐둘 만하다
이번 조치는 미국 안에서 벌어지는 규제 변화다. 한국 전기요금이나 국내 발전소 규제가 곧바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봐야 할 것은 방향이다. 해석하자면, AI 경쟁이 칩과 모델을 넘어 전력을 얼마나 싸고 빨리 확보하느냐의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는 신호다. 미국 행정부가 탄소 규제를 걷어내면서까지 데이터센터와 발전소의 문턱을 낮추려 한다는 점이 그 무게를 보여준다.
- 미국에 공장·데이터센터를 짓는 기업: 당장은 전력 설비를 늘리기가 조금 쉬워질 것으로 보인다(추측). 반면 소송 결과나 정권 교체로 규제가 되살아날 여지가 남아 있어 정책 불확실성은 오히려 커졌다.
- 미국 데이터센터 기반 AI 서비스를 쓰는 기업: 데이터센터 전력이 가스·석탄 발전에 더 기대게 되면, 기업이 스스로 정한 탄소 감축 목표와 부딪칠 가능성이 있다(추측).
- 데이터센터와 전기요금 논쟁: 데이터센터가 늘면서 전기요금과 환경 부담을 둘러싼 논쟁이 커지는 미국 상황은, 데이터센터 입지와 전력 수급을 고민하는 한국에도 참고할 만한 사례다.
확인된 것과 아직 불확실한 것
확인된 것
- EPA는 바이든 정부 때 도입된 발전소 온실가스 요건을 폐지하기로 최종 확정했다.
- 발전 부문에 남은 온실가스 배출 한도를 모두 없애는 안을 제안했고, 45일 동안 공개 의견을 받는다.
- EPA는 확정한 규정으로 3,100억 달러, 새 제안으로 직접 규제 준수 비용 3억 7,000만 달러가 절감된다고 주장한다.
-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월 자동차 온실가스에 대한 위해성 판단을 이미 뒤집었다.
- 시에라클럽 등 환경단체가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아직 불확실한 것
- 새 폐지안이 의견수렴을 거쳐 원안대로 확정될지
- 예고된 소송이 규제 폐지를 늦추거나 뒤집을지
- EPA 절감액의 산정 근거, 그리고 환경단체가 말하는 의료비·보험료 증가와 비교하면 어떤지(구체적 수치는 아직 없음)
- 규제 폐지가 실제로 데이터센터 건설 속도와 미국 전기요금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
EPA는 3,100억 달러 절감을, 반대편은 가계 부담을 말한다
EPA는 규제를 걷어내면 수천억 달러를 아낀다고 말한다. 반대편의 계산은 다르다. 아낀다는 그 돈이 병원비와 보험료, 전기요금이 되어 가계에 떠넘겨진다고 본다. 환경단체가 말하는 의료비·보험료 증가에는 아직 구체적인 수치가 없다. EPA 절감액이 어떤 근거로 나왔는지도 이번 보도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양쪽 모두 검증할 숫자가 부족하다. 어느 쪽 계산이 맞는지 지금 판가름하기는 어렵다.
흐름은 선명하다. 미국이 AI 인프라를 늘리려고 기후 규제를 ‘조정할 대상’이 아니라 ‘없앨 대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것. 앞으로 45일간의 의견수렴과 뒤따를 소송이 이 방향이 굳어질지, 되돌려질지를 가르는 첫 관문이 된다.
출처: The Verg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