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합판에 회로기판 하나만 덜렁 얹힌 물건이 경매에서 6억 원을 넘긴 적이 있다. 케이스도 없다. 키보드도 없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차고에서 만들었다는 애플1(Apple I) 얘기다. 전원 공급장치까지 따로 사야 했던 이 허름한 기계가 왜 지금은 부르는 게 값이 됐을까.
애플1, 정확히 어떤 물건이었나
1976년, 워즈니악이 회로를 설계하고 잡스가 판매를 맡아 세상에 내놨다. 정식 명칭은 ‘애플 컴퓨터 1’, 가격은 666.66달러. 요즘 기준의 완제품 PC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 메인보드만 팔았다. 케이스·파워서플라이·키보드·모니터는 구매자 몫이었다
- 총 생산 대수는 175~200대 수준으로 추정된다
- 애플2가 나오면서 상당수가 버려지거나 매장에 반납돼 사라졌다
왜 이렇게까지 비싸졌나
지금까지 남아 있고 작동까지 되는 개체는 60~70대 안팎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실리콘밸리 신화의 출발점이라는 상징성이 더해지니 몸값이 뛸 수밖에. 2013년엔 671,000달러에 낙찰된 사례가 있었고, 이후로도 비슷하거나 그 이상 가격에 거래된 경우가 이어진다. 경매에서 가격을 가르는 결정적 변수는 ‘작동 여부’다. 껍데기만 남은 보드와 실제로 부팅되는 보드는 가격 차이가 몇 배씩 벌어진다. 이건 좀 웃긴데, 시대를 초월한 골동품인데도 결국 켜지느냐 안 켜지느냐로 값이 갈린다.
진품인지 가짜인지, 구별하는 법
고가 거래가 잦다 보니 복제품과 위조품도 같이 늘었다. 사기 전에 확인할 포인트는 이렇다.
- 보드 상의 시리얼 넘버와 칩 각인 날짜코드가 실제 생산 시기와 맞는지
- 워즈니악 친필 서명이 있는지, 있다면 진위를 별도로 감정받았는지
- 바이트샵(Byte Shop) 경로로 팔린 초기 로트인지, 잡스가 직접 판 후기 로트인지
- RR옥션, 크리스티, 소더비 같은 전문 경매사의 사전 검증 이력이 있는지
개인 간 직거래보다는 공인 감정을 거친 경매사를 통하는 쪽이 안전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몇억짜리 물건을 중고나라 감성으로 살 순 없는 노릇이다.
애플1 말고도 억대 찍는 레트로 컴퓨터들
희귀 컴퓨터 시장이 애플1 하나로 굴러가는 건 아니다. 초기 IBM PC 프로토타입, 코모도어 PET 시제품, 매킨토스 128K 초기 생산분도 수집가 사이에서 고가에 거래된다. 공통점은 뚜렷하다. 극소량 생산, 기술사의 이정표, 유명 개발자와의 연관성. 이 세 가지가 겹칠수록 값이 뛴다.
빈티지 컴퓨터 수집, 어디서 시작하나
애플1급 희귀품에 곧바로 뛰어들 필요는 없다. 진입 장벽 낮은 기종부터 접근하는 게 현실적이다.
- 코모도어64, 애플2e, 초기 IBM PC 호환기종은 수십만 원대에도 구할 수 있다
- 이베이 같은 온라인 경매, RR옥션·크리스티 같은 전문 경매사, 국내 중고 커뮤니티. 이 세 루트를 같이 들여다보면 시세 감각이 빨리 잡힌다
- 초보자라면 무리한 복원보다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쪽이 가치 유지에 낫다
보관과 관리, 의외로 까다롭다
수십 년 된 회로기판의 가장 큰 적은 전해 커패시터 누액과 배터리 부식이다. 습도는 50% 안팎으로 유지하고 직사광선은 피하고, 정전기 방지 포장은 기본이다. 전원을 켤 때 곧바로 꽂지 말 것. 전문가 점검부터 받는 게 낫다. 무작정 전원을 넣었다가 회로가 통째로 죽는 사례, 생각보다 흔하다.
이것도 궁금하죠?
Q. 애플1 실물을 지금도 개인이 구할 수 있나?
극히 드물게 경매에 나온다. 나올 때마다 세계 각지 수집가와 박물관이 붙기 때문에, 개인 직거래로 구하는 건 사실상 어렵다고 보면 된다.
Q. 복제품(Replica) 애플1도 소장 가치가 있나?
원본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워즈니악의 설계를 그대로 재현한 정식 라이선스 키트는 애호가 사이에서 나름 인기다. 가격은 원본의 수백분의 1 수준.
Q. 국내에서도 빈티지 컴퓨터 수집이 활발한가?
애플1급 희귀품은 드물지만, 8비트 PC통신 시절 기종을 모으는 국내 커뮤니티는 꾸준히 굴러가고 있다.
결국 남는 건 이야기값
애플1의 가격표는 성능이 아니라 스토리다. 차고에서 시작한 두 사람이 세계 최대 기업을 일궈낸 출발점이라는 서사가, 회로기판 한 장에 통째로 붙어 있는 셈. 수집을 시작한다면 값비싼 상징보다 손닿는 기종부터 만져보며 감각을 키우는 편이 오래 즐기기엔 낫다.
출처: Engadg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