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에 이미 있는 수소 가스만 긁어모아도 인류가 수백 년은 쓸 수 있다는 추정치가 나왔다. 그러자 채굴 회사와 투자자들이 지구 곳곳을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미국 캔자스 평원, 프랑스 로렌 지방, 호주 내륙까지 시추팀이 몰려드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산화탄소를 거의 안 뿜으면서 값싸게 얻을 수 있는 수소, 바로 ‘백색수소’ 때문이다.
백색수소(천연수소), 정체가 뭘까
백색수소는 공장에서 만드는 게 아니다. 지각 속에서 자연적으로 생겨 고여 있는 수소 가스, 그게 전부다. 철분 많은 암석이 지하수와 반응하는 사문암화 작용, 방사성 광물의 붕괴, 유기물 분해… 만들어지는 경로는 여러 갈래다. 석유나 천연가스처럼 지표 아래 특정 지층에 갇혀 있다가 시추공만 뚫으면 그대로 뽑아 쓸 수 있다. 별도의 전기분해나 개질 공정이 필요 없다는 게 제일 큰 매력이다.
그린·블루·그레이수소랑 뭐가 다른가
수소는 만드는 방식에 따라 색깔로 나눈다.
- 그레이수소: 천연가스를 개질해 만들며 이산화탄소를 그대로 배출
- 블루수소: 그레이수소와 같은 공정이지만 탄소를 포집·저장
- 그린수소: 재생에너지로 물을 전기분해해 생산, 생산 단가가 가장 비쌈
- 백색수소(천연수소): 땅속에 이미 존재해 채굴만 하면 되는 수소
그린수소는 킬로그램당 4~6달러, 블루수소는 2달러 안팎이 든다고 알려졌다. 반면 백색수소는 시추만 성공하면 킬로그램당 1달러 아래로도 떨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채굴 비용만 보면 옛날 석유·가스 개발이랑 크게 다를 게 없는 셈. 업계가 흥분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왜 갑자기 이렇게들 몰려드나
2019년, 서아프리카 말리의 한 우물에서 거의 순도 100%에 가까운 수소가 뿜어져 나오는 게 확인됐다. 이 사건 하나로 업계 시선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후 미국지질조사국(USGS)은 지하에 묻힌 수소 매장량을 조 단위 톤으로 추산하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이 중 경제성 있게 뽑아낼 수 있는 양만 따져도 수소 경제 전체를 몇백 년간 지탱할 규모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탄소 배출 없는 에너지원을 싸게 확보할 수 있다는 기대, 그게 자본을 끌어들이는 배경이다.
지금 어디를 파고 있나
탐사가 활발한 지역은 생각보다 넓지 않다. 지질 조건이 맞는 몇몇 곳에 몰려 있는 정도.
- 미국 캔자스·네브래스카: 오래된 유전 지대 아래에서 고농도 수소 발견
- 프랑스 로렌: 폐광산 인근에서 대규모 매장 가능성 확인
- 호주 남호주주: 스타트업들이 시추권 확보 경쟁
- 알바니아, 오만, 브라질: 사문암 지대 중심으로 탐사 진행
Koloma, Natural Hydrogen Energy, Helios Aragon 같은 신생 기업들이 벤처캐피털 자금을 받아 시추에 뛰어들었다. 대형 에너지 기업들도 지분 투자나 공동 탐사 형태로 슬쩍 발을 걸치는 중이다.
상용화까지 남은 숙제, 만만치 않다
가능성이 크다고 곧바로 사업이 되는 건 아니다. 걸림돌이 몇 개 남아 있다.
- 정확히 어디에 얼마나 매장돼 있는지 예측하는 탐사 기술이 아직 초기 단계
- 기존 석유·가스 시추 장비를 그대로 쓰기 어려워 전용 설비 개발 필요
- 수소를 안전하게 모으고 운반할 파이프라인과 저장 인프라 부족
- 매장량 대비 실제 채굴 가능량을 검증할 표준화된 규정 미비
업계에서는 본격적인 상업 생산까지 최소 5~10년은 걸릴 거라 보는 시각이 많다. 솔직히 이 정도면 아직 갈 길이 먼 편이다. 시추 성공률을 높이는 탐사 알고리즘과 지질 데이터 축적, 이게 관건으로 꼽힌다.
이것도 궁금하죠?
Q. 백색수소는 재생에너지로 분류되나?
엄밀히는 화석연료도 아니고 재생에너지도 아닌 별도 범주로 다뤄진다. 다만 채굴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거의 없어서 청정에너지로 분류하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Q. 한국에서도 백색수소를 찾을 수 있나?
국내는 지질 구조상 사문암 지대가 넓지 않아 대규모 매장 가능성은 낮게 본다. 다만 학계 차원의 기초 탐사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Q. 수소차 연료랑 같은 건가?
정제 과정만 거치면 똑같은 수소 분자다. 연료전지차, 발전용 연료 등 기존 수소 활용처에 그대로 쓸 수 있다.
결국 관건은 얼마나 빨리, 얼마나 싸게 뽑아내느냐다. 시추 성공 사례가 하나둘 쌓이면 에너지 지도 자체를 뒤흔들 잠재력이 있는 분야다. 관련 기업들 탐사 소식은 앞으로도 챙겨볼 가치가 있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