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켄터키주 파듀카 외곽에 가면 낡은 저장 실린더 수천 개가 그냥 줄지어 서 있다. 안에 든 건 옛 농축 시설에서 나온 열화우라늄, 한마디로 쓰다 버린 찌꺼기다. 그런데 이 찌꺼기에서 다시 쓸 만한 우라늄을 뽑아내려는 시도가 지금 진행 중이다. 여기 동원되는 도구가 원심분리기가 아니라 레이저라는 게 포인트. 우라늄을 어떻게 농축하는지, 이 공정 하나가 왜 원전 산업 전체를 흔드는지 한번 정리해봤다.
우라늄 농축, 왜 굳이 하는 걸까
땅에서 캐낸 우라늄, 그대로는 원전에 못 넣는다. 핵분열을 잘 일으키는 U-235 비율이 전체의 0.7%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일반 경수로 연료로 쓰려면 이 비율을 3~5%까지 끌어올려야 하고, 무기급으로 가려면 90% 이상까지 높여야 한다. 이렇게 비율을 인위적으로 높이는 전 과정, 이게 농축이다. 농축도가 낮으면 발전용, 높으면 군사용에 가까워진다. 딱 이 구조 때문에 기술 자체가 늘 안보 이슈랑 붙어 다닌다.
농축 방식 3가지, 뭐가 다른가
지금까지 상용화된 농축 기술은 크게 세 갈래다.
- 기체 확산법: 냉전 시절 주력이던 방식. 전력을 어마어마하게 잡아먹어서 지금은 거의 퇴출됐다.
- 원심분리법: 현재 세계 농축 물량 대부분을 담당하는 주류 기술. 러시아, 유럽 컨소시엄, 미국이 이 방식으로 돌아간다.
- 레이저 농축법: 레이저로 동위원소를 선택적으로 들뜨게 해 분리하는 방식. 설비 규모가 작고 전력 소모도 적어서 차세대 기술로 꼽힌다.
정리하면 원심분리는 검증된 안정성, 레이저는 효율과 비용. 이 두 축에서 승부가 갈린다.
레이저 농축, 왜 다시 화두에 올랐나
Global Laser Enrichment(GLE) 같은 회사가 파듀카에 쌓인 옛 농축 폐기물, 이른바 ‘테일즈’에서 우라늄을 다시 걸러내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원심분리 설비를 새로 짓는 것보다 훨씬 적은 인프라로, 이미 버려진 취급을 받던 저농축 폐기물에서 쓸 만한 U-235를 뽑아낼 여지가 있다는 게 핵심이다. 새로 채굴 안 하고 기존 재고를 재활용한다는 점, 자원 순환 측면에서 장점이 꽤 크다. 다만 레이저 방식은 원리상 고농축 단계까지 효율적으로 넘어갈 수 있어서, 핵확산 관점에선 통제가 까다롭다는 지적도 꾸준하다. 실제로 관련 기반 기술인 SILEX는 오랫동안 수출 통제 대상이었다. 이 대목, 솔직히 여기서 갈린다.
SMR 시대, 연료 확보가 발등의 불인 이유
AI 데이터센터발 전력 수요가 늘면서 SMR(소형모듈원전)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문제는 상당수 SMR 설계가 HALEU, 그러니까 농축도 5~20% 사이의 고순도 저농축우라늄을 요구한다는 점. 그런데 HALEU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설비는 러시아에 편중돼 있고, 미국과 유럽은 아직 독자 공급망을 제대로 못 갖췄다. 이 공백 메우는 대안으로 폐기물 재처리와 레이저 농축을 묶은 조합이 부상하는 셈이다. SMR 아무리 많이 발주해봐야 연료 없으면 그냥 껍데기다. 그래서 농축 기술 확보 경쟁이 원전 산업 뒷단에서 조용히, 그리고 꽤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안전성과 확산 우려, 어디까지가 진짜 문제일까
레이저 농축 설비는 원심분리보다 작고 전력도 적게 써서 은닉하기 쉽다는 우려가 늘 따라붙는다. 이 때문에 상업용 레이저 농축 프로젝트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대상에 들어가고, 저농축 발전용 목적임을 계속 증명해야 한다. 효율성과 확산 리스크, 이 둘 사이에서 균형 잡는 게 규제 당국의 진짜 고민이다.
한국은 이 판에서 어디쯤 있을까
한국은 한미 원자력협정 때문에 우라늄을 자체적으로 농축하거나 재처리할 권한이 제한돼 있다. 그래서 국내 원전 연료는 해외에서 저농축우라늄을 사 오는 구조에 의존한다. SMR 수출을 새 먹거리로 밀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도 연료 공급망 문제, 남 얘기가 아니다. 원자로 잘 만들어 팔아도, 그 원자로 돌릴 연료를 어디서 얼마에 확보하느냐가 결국 발목 잡을 변수라서.
이것도 궁금하죠?
Q. 레이저 농축은 원심분리보다 무조건 나은 기술인가?
아니다. 효율과 설비 크기에서는 강점이 있지만 상용화 실적이 원심분리보다 훨씬 적어서, 대량 생산 안정성은 아직 검증 중인 단계다.
Q. 폐기물 재처리로 나온 우라늄도 원전에 바로 쓸 수 있나?
추가 농축과 정제 공정을 거쳐야 하고, 규제 당국 승인도 필요하다. ‘재활용’이라고 절차가 간소화되는 건 아니다.
Q. 한국도 언젠가 자체 농축을 할 수 있을까?
협정 개정이 전제 조건이라 기술력보다는 외교 협상의 영역에 가깝다.
결국 남는 질문은 이거다
레이저 농축 상용화 속도, HALEU 공급망 다변화 여부, 미국이 폐기물 재처리 프로젝트에 얼마나 힘을 실어주느냐. 이 세 가지가 앞으로 SMR 확산 속도를 가를 변수다. 원자로 설계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 원자로에 넣을 연료를 누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하느냐. 이게 이 산업의 진짜 승부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