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상도 못 통과한 약. 그런데 그걸 써볼 수 있다면? 미국엔 이런 길이 실제로 있다. 이름하여 ‘Right to Try’ 법이다. 말기 질환, 희귀 유전질환을 진단받은 환자와 가족들 사이에서 요즘 이 제도의 신청 조건과 절차를 검색창에 두드리는 일이 부쩍 늘었다.
Right to Try, 정확히 뭐길래
2018년, 미국 연방 차원에서 이 법이 만들어졌다.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을 가진 환자라면 FDA 승인 전 단계, 그러니까 아직 시장에 나오지 않은 임상시험용 의약품에 접근할 길을 열어준 것이다. 그전엔 방법이 하나뿐이었다. FDA의 ‘동정적 사용(compassionate use)’ 프로그램. 신청부터 승인까지 서류가 산더미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연방법이 생긴 뒤로는 40개가 넘는 주가 각자 Right to Try 법을 따로 만들었다. 일부 주는 보험사 고지 의무를 강화하거나 미성년자 적용 범위를 넓히는 쪽으로 조례를 계속 손보는 중이다.
임상시험이랑 뭐가 다른가
승인 전 약물을 쓴다는 점은 똑같다. 근데 목적도, 절차도 다르다.
- 목적: 임상시험은 안전성·유효성 데이터 수집이 우선이고, Right to Try는 환자 개인의 치료가 목적이다.
- 약물 단계: Right to Try는 최소 1상 시험을 통과한 약물만 대상이 된다.
- 배정 방식: 임상시험은 무작위 배정과 위약 대조군이 있을 수 있지만, Right to Try는 위약 없이 실제 약물을 투여받는다.
- 데이터 의무: 제약사는 부작용을 FDA에 보고해야 하지만, 이 데이터가 정식 승인 심사에 직접 반영되지는 않는다.
실제로 신청하는 사람들, 어떤 질환인가
제일 많은 건 말기암 환자, 그리고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 환자다. 그다음이 소아 희귀 유전질환. 유전자 검사, 그러니까 엑솜이나 전장 유전체 분석으로 원인 돌연변이는 찾았는데 승인된 치료제가 하나도 없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부모들은 임상시험 대상자 모집이 시작되기도 전에 개발 단계 약물부터 찾아 나선다. 환자 수 자체가 워낙 적은 초희귀 질환이라, 제약사 입장에서도 정식 임상시험을 설계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현실적인 벽이 있다.
신청 절차, 뭘 갖춰야 하나
주마다 세부 조항은 조금씩 다르다. 그래도 뼈대는 비슷하다.
- 담당 전문의가 대체 치료법이 없다는 진단서와 소견서를 작성한다.
- 해당 약물을 개발 중인 제약사가 제공에 동의해야 한다. 제공 의무는 없다, 회사의 자율적 결정이다.
- 병원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심사를 요구하지 않는 대신, 부작용 발생 시 FDA 보고 절차를 따른다.
- 비용은 원칙적으로 환자 부담이며, 보험 적용은 주별로 갈린다.
유전자 검사와 AI, 신약 후보 발굴 속도를 바꾸다
초희귀 유전질환에서 Right to Try 신청이 가능해진 데는 진단 기술 발전이 크다. 전장 유전체 분석 비용이 뚝 떨어지면서 원인 돌연변이를 몇 주 안에 찾아낼 수 있게 됐다. 여기에 바이오 기업들이 AI 기반 단백질 구조 예측, 표적 발굴 모델을 붙이면서 극소수 환자만을 위한 맞춤형 치료제, 이른바 N-of-1 치료 후보를 훨씬 짧은 기간에 설계해내고 있다.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처럼 특정 돌연변이 서열에 맞춰 제작하는 플랫폼이 대표적이다. AI 연산으로 후보 서열 탐색 시간을 크게 줄인 사례로 자주 꼽힌다. 개인적으로는 이 속도, 좀 무섭기도 하다.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 Right to Try로 접근 가능한 후보 약물의 폭도 같이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계와 위험, 기대만큼 쉽지 않다
취지는 좋다. 근데 넘어야 할 현실적 장벽은 여전히 남아 있다. 솔직히 여기서 갈린다.
- 1상만 통과한 약물은 안전성 데이터가 제한적이라 예상치 못한 부작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보험 미적용 사례가 많아 수억 원대 비용을 가족이 떠안는 경우가 흔하다.
- 제약사가 소송 리스크나 임상시험 일정 차질을 우려해 제공을 거절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 개별 환자 데이터가 쌓여도 정식 승인 심사용 통계적 근거로 인정받기는 어렵다.
자주 묻는 질문들
Q. Right to Try로 받은 치료, 보험 적용되나?
대부분 안 된다. 일부 주가 보험사한테 고지 의무 정도만 지우고, 실제로 돈을 내주고 말고는 보험사 재량이다.
Q. 제약사가 약물 제공을 거부하면 방법이 없나?
법적으로 제공 의무 자체가 없다. 거부해도 문제 될 게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다른 개발사의 유사 기전 약물을 찾아보거나, 정식 임상시험 모집을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Q. 한국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나?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임상시험용 의약품 동정적 사용’ 승인 제도가 개념상 가장 가깝다. 절차나 심사 주체는 미국이랑 다르다. 다만 대체 치료 수단이 없는 환자에게 개발 단계 약물 접근을 허용한다는 취지 자체는 똑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