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협 비밀번호 눌렀더니 폰이 통째로 삭제됐다, 미국은 이걸 기소했다

국경 검사에서 위협 비밀번호로 폰을 지웠다가 연방법 위반으로 기소된 미국 시민 사건. 그래핀OS 삭제 기능, CBP 수색 통계, 활동가 감시 의혹까지 짚어봤다.

2025년 1월 24일, 애틀랜타 하츠필드-잭슨 국제공항. 도미니카공화국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미국 시민 새뮤얼 튜닉이 세관 2차 검사대에 붙잡혔다. 국경 요원이 스마트폰 비밀번호를 요구했다. 튜닉은 순순히 눌렀다. 그런데 화면이 켜지는 대신, 폰 안의 데이터가 통째로 날아갔다. 미국 법무부는 이걸 근거로 튜닉을 연방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판례조차 찾기 힘든, 이른바 위협 비밀번호 기소 1호 사건이다.

비밀번호 하나로 폰이 사라진다고?

튜닉의 구글 픽셀에는 그래핀OS라는 보안 강화 운영체제가 깔려 있었다. 평소 쓰는 잠금 비밀번호 말고, 위협 비밀번호라는 걸 따로 등록할 수 있는 기능이다. 겉보기엔 똑같은 숫자·문자 조합. 그런데 이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확인창 하나 없이 기기 안 모든 데이터가 그 자리에서 삭제된다. 강압적으로 잠금 해제를 요구받는 상황을 대비한 기능이다. 국경 검문, 강도, 뭐든. 튜닉은 요원에게 이 위협 비밀번호를 알려줬고, 요원이 화면에 입력하는 순간 폰은 초기화됐다.

미국 국경엔 영장이 필요 없다

한국에서는 낯선 얘기일 수 있는데, 미국 세관국경보호청(CBP)은 공항이나 국경에서 영장 없이 여행자 전자기기를 수색할 권한을 갖는다. 이른바 국경 수색 예외. 이 원칙 덕분에 CBP가 2025 회계연도에 들여다본 전자기기는 55,318건, 전년보다 17.6% 늘었다. 미국 시민 소유 기기만 따로 떼어봐도 2023년 8,657건에서 2025년 13,590건으로 뛰었다. 문제는 이번처럼 수색 대상자가 데이터를 지워버리면, 정부 입장에서는 증거 인멸로 몰아갈 여지가 생긴다는 점. 튜닉에게 적용된 조항도 해킹 관련법이 아니라 압수를 막으려 재산을 파괴한 죄, 그 조항이다.

아동 착취물 수사였나, 활동가 감시였나

당시 요원들은 튜닉에게 아동 착취 이미지 소지 여부를 캐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튜닉 측 변호인이 낸 증거 배제 신청서를 보면 얘기가 좀 다르다. 변호인단 주장은 이렇다. 정부가 구체적 증거도 없이 혐의만 둘러댔고, 진짜 목적은 튜닉이 몸담은 환경운동 단체 ‘디펜드 디 애틀랜타 포레스트’에 대한 감시였다는 것. 이 단체는 애틀랜타 경찰 훈련시설, 이른바 캅 시티 건설에 반대해온 조직이다. 연방 수사기관 감시 대상으로 이름이 여러 번 오르내렸던 곳이기도 하고. 변호인단은 구금, 변호인 접견 거부, 폰 압수까지 전부 위법이었다며 증거 배제를 요청해둔 상태다.

왜 이례적인 기소라고 하는 걸까

전자프런티어재단 수석 기술자 빌 버딩턴과 보안업체 그래닛 설립자 루나 산드비크는 테크크런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위협 비밀번호 사용을 이유로 연방정부가 형사 기소에 나선 사례는 본 적이 없다고. 그래핀OS 같은 위협 삭제 기능은 원래 활동가, 기자,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강압적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키려고 쓰는 도구로 알려져 있다. 이번 기소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이런 보안 기능을 켜두는 것 자체가 형사 처벌 리스크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솔직히 여기서부터 갈린다 — 보안이냐 증거 인멸이냐. 애틀랜타 연방법원은 올해 안에 증거 배제 신청에 대한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핵심만 4줄

  • 그래핀OS의 위협 비밀번호는 강압 상황에서 기기를 지키려고 만든 보안 기능이다.
  • 미국 정부는 이 기능 사용을 증거 인멸로 규정, 재산 파괴죄로 기소했다.
  • 튜닉 측은 수색 자체가 활동가 감시를 위한 핑계였다고 맞서고 있다.
  • 판결 결과에 따라 보안 소프트웨어 업계 전체의 기능 설계 방향이 흔들릴 여지도 있다.

미국 오갈 일 있다면, 남 일 아니다

미국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오가는 나라 중 하나다. CBP는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가리지 않고 전자기기 수색 권한을 행사한다. 미국 출장이나 여행을 앞두고 있다면 그냥 넘길 얘기가 아니라는 거다. 국내에서도 삼성 녹스나 보안 폴더처럼 데이터를 격리·삭제하는 기능은 이미 익숙하다. 비슷한 논쟁이 국내 법정에서 안 벌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 출국 전 스마트폰을 클라우드에 백업하고, 불필요한 데이터는 미리 지워두기
  • 위협 삭제나 게스트 모드 같은 보안 기능을 켠 채 입국 심사를 받을 때의 위험을 숙지해두기
  • 세관 요원 요구에 응할 법적 의무 범위를 미리 확인해두기

국경에서의 디지털 프라이버시 논쟁, 이제 어느 한 나라만의 사정이 아니다. 스마트폰 들고 국경 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주칠 수 있는 문제로 번지는 셈이다.

출처: The Verge

글로벌뉴스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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