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스 에반겔리디스가 X에 올린 글은 딱 한 줄이었다. CMF의 올해 신작 없음. Nothing의 공동창업자가 직접 공지한 내용이다. CMF Phone 2 Pro 후속작, 즉 올해 나왔어야 할 차세대 CMF 폰이 취소됐다. 이유는 하나다. 메모리 가격.
RAMageddon — 예산폰에 날아든 청천벽력
업계에서 요즘 ‘RAMageddon’이라는 말이 돈다. DRAM 가격이 2024년 하반기부터 가파르게 오르면서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원가를 통째로 흔들어놓은 현상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에반겔리디스는 “지금 메모리 가격으로는 우리가 목표하는 가격대로 폰을 만들 수 없다”고 직접 밝혔다. 돌려 말하지 않았다.
중저가폰이 직격탄을 맞는 건 구조 문제다. 플래그십은 RAM 원가 상승분을 소비자 가격에 슬쩍 올려받으면 된다. 그런데 CMF처럼 199~299달러 선을 사수해야 하는 브랜드는 선택지가 두 개뿐이다. 원가 상승을 고스란히 떠안거나, 출시를 포기하거나. 이번엔 포기를 선택했다.
CMF가 뭐였는지부터
CMF는 Nothing의 서브 브랜드다. 2023년 CMF Phone 1로 시장에 들어왔다. ‘디자인은 살리되 가격은 낮춘다’는 전략이었는데, 솔직히 나름 잘 먹혔다. CMF Phone 2 Pro는 6.67인치 AMOLED에 Dimensity 7300 Pro를 얹고도 공격적인 가격을 유지해 유럽·아시아에서 호평을 받았다.
이 브랜드가 먹히는 이유는 딱 하나, ‘가격 대비 경험’이다. 근데 RAM 가격이 오르면 이 공식 자체가 무너진다. Nothing은 내년 시장 상황을 다시 보겠다고 했다. 구체적인 출시 일정? 없다.
AI가 메모리 시장을 갉아먹고 있다
근본 원인은 AI 수요다. 엔비디아 GPU에 들어가는 HBM(고대역 메모리) 생산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팹 라인이 대거 투입되면서 일반 DRAM 공급이 줄었다. The Verge와 9to5Google 보도를 보면, HBM 전환으로 인한 모바일 DRAM 공급 부족이 2025~2026년에도 이어지는 흐름이다.
- HBM 수요: AI 서버 한 대에 들어가는 메모리가 스마트폰 수십 대분에 해당
- 공급 전환: 삼성·SK하이닉스, HBM 생산 비중 지속 확대로 일반 DRAM 줄어
- 가격 결과: 모바일 DRAM 가격 2024년 대비 30~40% 상승 추정
이건 좀 과한 수준이다. 스마트폰 한 대 팔아서 남는 마진이 얼마 안 되는 중저가 브랜드 입장에선 치명적이다.
CMF만 당한 게 아니다
중소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삼성·애플과 달리 메모리 공급사와 장기 계약을 맺기 어렵다. 스팟 시장 가격 변동에 그대로 노출된다. CMF 외에도 여러 중소 브랜드들이 스펙 다운그레이드나 출시 연기를 단행했다는 업계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반면 삼성 갤럭시 A 시리즈나 샤오미 레드미처럼 메모리를 자체 조달하거나 대량 구매력을 가진 브랜드는 이 파고를 상대적으로 잘 넘기고 있다. 결국 스케일이 생존을 결정하는 구도다.
국내에서 체감하는 변화
CMF 폰은 국내 공식 출시 이력이 없다. 그래도 직구나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꾸준히 찾는 사람들이 있었고, 올해 후속작을 기다리던 이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소식이다.
더 넓게 보면, 이 사태는 AI 인프라 투자가 소비자 전자기기 시장에 어떤 형태로 타격을 주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AI 붐이 반도체 가격을 끌어올리고, 그 여파가 중저가 스마트폰의 신제품 공백으로 이어지는 연쇄반응. 나비효과치고는 꽤 직접적이다.
역설적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 흐름에서 수혜를 보고 있다. HBM 판매 단가가 높아지면서 실적이 개선된다. 소비자 입장에선 200달러대 신제품 폰 선택지가 줄어드는 현실이 남는다. 당분간 이 가격대에서 완성도 있는 신제품을 찾는다면 갤럭시 A 시리즈 외에 마땅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출처: The Verg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