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중국 블랙리스트 기업 D램 사겠다고 신청했다 — 삼성은 긴장해야 하나

애플이 미 국방부 블랙리스트에 오른 중국 메모리 기업 CXMT의 D램 구매 허가를 트럼프 행정부에 신청했다. AI 수요로 D램 가격이 20~30% 폭등한 가운데, 삼성·SK하이닉스의 가격 협상력을 낮추려는 전략적 포석으로 읽힌다.

애플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 중국 기업한테 D램을 사겠다고 손을 들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를 보면, 애플은 트럼프 행정부에 중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CXMT로부터 D램 칩을 구매할 수 있도록 예외 승인을 요청했다. CXMT는 인민해방군(PLA) 연계를 이유로 미 국방부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기업이다. 이 카드를 꺼낼 만큼 지금 공급망 압박이 급하다는 신호다.

애플이 이 카드를 꺼낸 이유

AI 열풍이 반도체 시장 전체를 흔들고 있다. 엔비디아 GPU에 탑재되는 HBM(고대역폭 메모리)부터 스마트폰용 LPDDR5 D램까지, 수요가 폭발하면서 가격도 따라 올랐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 집계를 보면 2025년 하반기 D램 고정 거래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20~30% 상승했다. 20~30%면 그냥 살짝 오른 게 아니다.

애플 입장에서 아이폰·맥·아이패드에 들어가는 메모리는 연간 수억 개 단위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세 곳에서만 받아오면 협상 테이블에서 을이 될 수밖에 없다. 경쟁자를 하나 더 끼워 넣어서 가격 레버리지를 높이겠다는 계산이다. 교과서적인 조달 전략이긴 한데, 상대가 블랙리스트 기업이라는 게 문제다.

CXMT, 어떤 회사인가

CXMT(창신메모리기술·长鑫存储技术).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에 본사를 둔 D램 전문 기업이다. 2016년 설립됐고, 중국 정부 반도체 굴기 정책의 집중 지원을 받았다. DDR4·LPDDR4X 같은 스마트폰·PC용 메모리를 주로 생산하며, 최근엔 DDR5 양산 능력도 갖춰가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삼성·하이닉스·마이크론 최상위 제품 대비 아직 한 세대 차이가 있다는 게 업계 지배적인 평가다. 그래도 중저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이미 중국 브랜드에 상당한 물량을 공급 중이다. 미 국방부는 2024년 CXMT를 ‘중국 군사 기업 목록(Chinese Military Company List)’에 올렸다. 그게 지금 이 상황의 핵심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딜레마

애플의 요청이 받아들여질지는 솔직히 안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반도체 기업을 압박하면서도, 미국 기업들의 원가 절감 요구를 외면하기도 어렵다. 블랙리스트 예외를 인정해 주면 “미국이 중국 군수 연계 기업에 자금을 대주는 꼴”이라는 강경파의 반발이 터져나올 게 뻔하다.

미국 의회에서는 최근 국방수권법(NDAA)을 통해 블랙리스트 기업과의 거래를 더 옥죄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애플에 ‘미국 내 생산 확대’를 압박해 왔다. 이번 건을 두고 맞바꾸기 협상이 이뤄질 가능성도 아예 배제하긴 어렵다. 정치적으로 여러 층위가 얽혀 있는 구도다.

메모리 가격 폭등, 왜 이렇게 됐나

D램 시장 공급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세 곳이 전 세계 물량의 95% 이상을 쥐고 있다. 완전한 과점이다. AI 수요가 급증하자 가격은 더 가파르게 튀었고, HBM 생산에 웨이퍼 투입량이 집중되면서 일반 D램 공급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풍선효과까지 겹쳤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는 구조다.

애플의 아이폰 16 시리즈는 기본 8GB LPDDR5X 메모리를 탑재한다. 매년 2억 대 이상 팔리는 아이폰만 따져도 메모리 조달 비용은 수조 원 단위다. 소수 공급사 과점이 이어지면 애플 마진에 직접 타격이 간다. 이번 움직임의 배경이 정확히 거기에 있다.

삼성·SK하이닉스에 떨어진 불똥

표면상 이번 뉴스는 애플-CXMT-미국 정부의 이야기다. 그런데 가장 예민하게 봐야 할 곳은 한국 반도체 업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애플의 메모리 최대 공급사로, 아이폰·맥북에 들어가는 D램과 낸드플래시를 수년째 납품해 왔다.

만약 애플이 CXMT로부터 저가 D램을 실제로 공급받기 시작한다면:

  • 단기적으로 물량 일부를 직접 빼앗길 수 있다
  • 장기적으로 가격 협상에서 애플이 “CXMT 쓸 수도 있다”는 레버리지를 쥐게 된다
  • 공급사 다변화가 현실화되면 한국 업체의 단가 인하 압박이 커진다

물론 CXMT의 품질이 애플의 공급사 품질 인증 절차(AQP)를 통과할 수준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실제 물량 전환까지는 수 년이 필요하다. 그래도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이 이번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K-반도체, 다음 수순은

이번 사안은 미중 반도체 전쟁의 새 국면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다. 미국이 블랙리스트를 유지하면서도 예외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면, 삼성·하이닉스가 누려온 ‘제도적 해자(moat)’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반도체 산업이 수출의 약 20%를 차지하는 한국 경제 구조상, 애플 공급망에서 국내 기업이 밀려나는 건 단순한 기업 이슈가 아니다. 단기 승인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애플이 CXMT라는 이름을 공개적으로 꺼냈다는 사실 자체가 시장에 메시지를 던진 거다. HBM 같은 고부가 기술로의 차별화를 서두를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출처: The Verge

글로벌뉴스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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