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렌던 카가 입을 열자 방송사들이 프로그램을 통째로 내렸다. 미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인 그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농담 하나를 문제 삼으면서 벌어진 일이다. 더버지 보도에 따르면 카 위원장은 취임 이후 줄곧 방송사의 표현 수위를 겨냥해왔고, 이번엔 면허라는 실탄까지 꺼내 들었다. 규제 기관 수장이 대통령 풍자를 이유로 면허 카드를 흔드는 그림, 미국 방송 역사에서도 흔치 않다.
카 위원장, 대체 어떤 사람인가
브렌던 카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FCC 위원장 자리에 앉았다. FCC가 원래 하는 일은 TV·라디오 방송국에 면허를 내주고 전파 자원을 관리하는 것. 정치적 중립이 원칙이었다.
그런데 카 위원장이 들어서고 나서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평가가 많다. 방송사가 대통령을 풍자하거나 비판적 발언을 내보내면, 곧바로 면허 얘기부터 나온다. 압박 수위가 눈에 띄게 올라갔다.
지미 키멀 쇼가 터뜨린 파장
대표 사례는 ABC 간판 프로그램 ‘지미 키멀 라이브’다. 진행자 지미 키멀이 트럼프 대통령 관련 발언을 방송에 내보내자, 카 위원장은 공개 발언으로 방송사 쪽에 사실상 신호를 보냈다. 조치를 취하라는.
결과는 바로 나왔다. ABC 계열국을 운영하는 넥스타와 싱클레어, 두 대형 방송그룹이 자체적으로 송출을 끊어버렸다. 여론이 들끓자 며칠 뒤 방송은 재개됐지만, 뒷맛이 씁쓸했다. 지역 방송국들이 FCC 눈치를 보다 스스로 검열에 나선 꼴이라는 지적이 쏟아졌으니까.
- 카 위원장의 공개 경고 발언 이후 이틀 만에 계열국 송출 중단
- 넥스타·싱클레어 등 대형 방송그룹이 선제적으로 자체 검열에 나섬
- 여론 반발로 방송 재개, 그러나 압박 효과는 이미 입증됨
콜베어 쇼 폐지, 타이밍이 묘하다
CBS는 스티븐 콜베어가 진행하던 심야 토크쇼 ‘더 레이트 쇼’를 접는다고 발표했다. 회사 측 설명은 순수한 경영 판단, 그뿐이라는 것.
문제는 시점이다. 콜베어는 방송에서 모회사 파라마운트가 트럼프 측과 1,600만 달러 규모로 합의한 소송 건을 두고 “명백한 뇌물”이라고 직격했다. 폐지 발표는 그로부터 며칠도 안 지나 나왔다. 파라마운트-스카이댄스 합병 심사가 한창이던 시기와도 겹친다. 우연이라 보기엔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다.
CBS·파라마운트까지 뻗은 손
압박은 지미 키멀 건으로 끝나지 않았다. CBS 모회사 파라마운트가 스카이댄스와 80억 달러 규모 합병을 추진하던 시기, FCC의 승인 권한이 지렛대로 쓰였다는 정황이 나온다.
합병 승인을 앞두고 파라마운트 쪽에서 보도 공정성 옴부즈맨을 새로 만들고 다양성 채용 정책도 축소했다. 이 시점이 공교롭게 FCC 심사 국면과 겹친다. 규제 권한을 쥔 기관이 방송사 편집 방향에까지 손을 댔다는 비판, 여기서 나온다.
FCC가 진짜로 쥐고 있는 카드
법적으로 FCC는 ABC나 CBS 같은 전국 네트워크가 아니라 지역 방송국에만 면허를 내준다. 네트워크 콘텐츠를 직접 규제할 권한, 원래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카 위원장의 압박이 먹히는 이유는 단순하다. 전국 네트워크는 지역 계열국 없이는 방송을 내보낼 수 없다. 계열국들은 FCC 면허 갱신 심사에 사업 존폐가 걸려 있다. 결국 네트워크 대신 계열국을 흔들어서 원하는 결과를 뽑아내는 우회 전략, 그게 핵심이다.
내부에서도 터져 나온 반대
FCC 위원 중 유일한 민주당 소속인 애나 고메즈는 이 방식이 권한 남용이라며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언론자유 단체들도 목소리를 냈다. 정부 기관이 콘텐츠 내용을 문제 삼아 면허를 무기 삼는 건 수정헌법 1조 위반 소지가 크다고.
방송사 입장도 이해는 간다. 소송으로 맞서는 것보다 사업 안정을 택하는 게 현실적으로 남는 장사다. 면허 심사가 몇 달씩 걸리고 그 사이 광고 매출이며 M&A 일정이 다 묶여버리니, 대다수는 다투는 대신 조용히 따르는 쪽을 고른다.
국내 방송가에도 남 얘기는 아니다
한국 시청자 입장에서는 먼 나라 얘기 같지만, 방송통신위원회와 언론사 관계를 떠올려보면 낯설지 않은 구도다. 국내에서도 정권 교체기마다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심사가 정치적 압박 수단으로 쓰였다는 논란, 반복돼 왔다.
넷플릭스·유튜브 같은 글로벌 플랫폼으로 콘텐츠 유통 중심이 옮겨가는 흐름 속에서, 지상파·종편 규제 권한을 쥔 기관이 콘텐츠 내용에 개입하는 선례는 국내 방송사와 제작사에도 참고할 사례다. 미국처럼 계열국 구조는 아니어도, 재허가 심사나 광고 규제를 지렛대로 쓰는 방식은 국내에서도 언제든 되풀이될 여지가 있는 리스크다.
더버지 원문: The Verg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