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 37조 개. 사람 몸 하나에 들어있는 세포 수다. 이 세포 하나하나가 어떤 유전자를 켜고 끄는지 낱낱이 기록해서 지도로 만들겠다는 프로젝트가 몇 년째 전 세계 연구소를 끌어모으고 있다. 이름하여 ‘휴먼 셀 아틀라스(Human Cell Atlas)’. 그런데 이 지도, 성인 데이터에만 쏠려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소아·발달 단계 세포를 채워 넣으려는 움직임이 최근 이어지는 중이다. 세포 지도가 정확히 뭐고, AI가 왜 여기서 필수 도구로 쓰이는지 짚어본다.
휴먼 셀 아틀라스, 뭘 만들겠다는 건가
휴먼 셀 아틀라스는 2016년 무렵 시작된 국제 컨소시엄 프로젝트다. 목표는 단순하다. 인체에 존재하는 세포 유형을 종류별로 빠짐없이 분류하고, 각 세포가 어떤 유전자를 발현하는지 기록해서 하나의 참조 지도로 묶는 것. 화학에 주기율표가 있듯, 생물학에도 기준표 하나 만들겠다는 발상이다. 스케일이 좀 큰가 싶지만, 실제로 영국 웰컴 트러스트 생어 연구소를 비롯해 전 세계 수십 개 기관이 이미 뛰어들었다. 지금까지 공개된 세포 데이터만 수천만 건. 적은 숫자가 아니다.
지도를 그리는 핵심 기술, 단일세포 시퀀싱
단일세포 RNA 시퀀싱(scRNA-seq)이 이 지도의 뼈대다. 예전 유전자 분석은 조직 하나를 통째로 갈아서 평균값을 뽑는 식이었다. 세포 수천 개가 뒤섞인 채로 측정하니 개별 세포의 개성은 죄다 뭉개졌던 셈. 단일세포 시퀀싱은 세포를 하나씩 분리해서 각각의 유전자 발현을 따로 읽어낸다. 덕분에 같은 조직 안에서도 전혀 다른 역할을 하는 세포 아형(subtype)까지 구분해낸다. 시퀀싱 비용이 10년 전보다 수십 분의 1로 떨어진 것도 이 프로젝트가 현실이 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다.
AI 없이는 애초에 불가능했던 작업
세포 하나당 측정되는 유전자는 2만 개가 넘는다. 여기에 수백만 개 세포 데이터가 쌓이면 사람 손으로 일일이 분류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작업의 대부분을 머신러닝이 떠맡는다. UMAP이나 t-SNE 같은 차원 축소 알고리즘으로 비슷한 발현 패턴의 세포를 묶고, 분류 모델이 세포 유형에 이름을 붙이는 식이다. 최근엔 scGPT, Geneformer처럼 유전자 발현 데이터로 사전학습한 생물학 파운데이션 모델까지 나왔다. 처음 보는 조직의 세포도 기존 지도와 대조해 유형을 추정하는 수준까지 왔다는 얘기다. 텍스트 대신 유전자 발현 벡터를 학습한 언어모델, 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성인 지도만으론 부족했다 — 소아·발달 데이터의 빈틈
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다룬 사례를 보면, 필라델피아 아동병원 소속 연구자가 이 빈틈을 알아챈 경위도 비슷하다. 지금까지 쌓인 데이터 대부분이 성인 조직에서 나왔다는 게 문제였다. 태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세포가 분화하고 조직이 자라는 과정은 성인 세포와 발현 패턴 자체가 다르다. 소아암, 선천성 심장질환, 발달장애처럼 어린 시기에만 나타나는 질환을 연구하려면 그 시기의 세포 지도가 따로 필요한데, 정작 그 구간이 텅 비어 있었던 것. 요즘 태아·영유아·청소년 단계 세포를 모아 별도의 소아 세포 지도를 구축하려는 연구가 속도를 내는 이유다. 성장 과정을 시간순으로 담은 지도가 생기면, 특정 유전자가 언제 켜지고 꺼지는지까지 추적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세포 지도, 실제로 어디에 쓰이나
이렇게 완성된 지도는 논문 속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실제 활용처를 꼽아보면 이렇다.
- 신약 타깃 발굴: 질병 조직에만 특이적으로 나타나는 세포와 유전자를 찾아내면, 그 유전자를 겨냥한 치료제 후보를 훨씬 빠르게 좁힐 수 있다.
- 희귀질환 진단: 정상 세포 지도와 환자 세포 데이터를 비교해서 어느 단계에서 발달이 어긋났는지 짚어낸다.
- 암 조기 발견: 암세포로 변하기 직전 단계의 미세한 유전자 발현 변화를, 정상 지도와 대조해 잡아낸다.
- 재생의료: 특정 세포를 인공적으로 배양할 때, 진짜 그 세포가 맞는지 검증하는 기준표로 쓴다.
바이오인포매틱스, 커리어로 볼 만한가
이 판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뜨는 직군이 바이오인포매틱스다. 생물학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 파이썬이나 R로 대용량 유전체 데이터를 다루는 능력, 여기에 머신러닝 모델을 직접 돌려볼 줄 아는 역량까지 겹쳐야 몸값이 오른다. 국내에서도 제약사와 바이오 스타트업 중심으로 단일세포 데이터 분석 경력자를 찾는 채용 공고가 꾸준히 올라온다. 순수 개발자 출신이 이 분야로 넘어가는 사례도 늘고 있다. 데이터 엔지니어링이나 ML 파이프라인 구축 경험이 생물학 도메인 지식보다 먼저 통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생물학은 일하면서 배워도 늦지 않다는 얘기, 현업 연구자들에게서 은근히 자주 듣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