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이 타이베이 무대에 섰다. 컴퓨텍스(Computex) 2024, 아시아 최대 규모 IT 박람회. 객석 반응은 록 콘서트 수준이었고, 그 에너지가 중계 화면을 통해서도 느껴질 정도였다. 루머는 이미 몇 달 전부터 돌았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뭔가 큰 걸 한다는 것.
그래픽카드 회사였던 엔비디아, 지금은
솔직히 5년 전만 해도 엔비디아는 ‘게이밍 GPU 만드는 회사’였다. 지금은 완전히 다른 회사다. AI 인프라의 핵심 기업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AI 학습과 추론을 돌리려면 GPU가 필수고, GPU 시장의 압도적 1위는 엔비디아다. 여기에 CUDA라는 개발 플랫폼으로 개발자 생태계까지 단단히 잠가버렸다. 경쟁사들이 하드웨어를 잘 만들어도 생태계를 뚫기가 쉽지 않은 건 이 때문이다.
젠슨 황의 한마디가 글로벌 기술 시장의 흐름을 바꾸고, 엔비디아 주가를 직접 움직이는 건 이런 배경 덕분이다. The Verge가 전한 바에 따르면, 이번 기조연설은 단순한 신제품 발표를 넘어서 AI 미래 전략 전체를 제시하는 자리로 기획됐다. 기대감이 그 어느 해보다 높았던 이유가 거기 있다.
MS 협력설의 실체, 몇 가지 시나리오
컴퓨텍스는 아시아 최대 IT 박람회 중 하나로, 하드웨어 제조업체들이 신기술을 처음 선보이는 무대다. 엔비디아는 매년 이 자리에서 최신 GPU 아키텍처나 AI 플랫폼 전략을 공개하며 업계 이목을 끌어왔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클라우드 협력: 최대 관심사는 MS와의 발표였다. Azure 위에서 돌아가는 엔비디아 GPU 클러스터 규모를 대폭 확장하는 공동 전략이 나올 거라는 관측이 많았다. 클라우드 AI 인프라를 둘러싼 두 회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지점이다.
- 코파일럿과의 기술 통합: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파일럿(Copilot) AI 서비스에 엔비디아 기술이 더 깊이 통합될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윈도우 사용자 수억 명이 사실상 엔비디아 AI 기술을 매일 쓰는 셈이 된다. 규모로 보면 이쪽이 파급력이 더 크다.
- 데이터센터와 소프트웨어 생태계: 최근 엔비디아가 하드웨어를 넘어 AI 소프트웨어 생태계 강화에 공을 들이는 만큼, 새로운 AI 데이터센터 솔루션이나 개발자 도구 발표도 예상됐다. 이건 솔직히 당연한 수순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단순 제품 발표보다 AI 생태계 주도권을 어떻게 나눌지 선을 긋는 자리에 가깝다고 봤다. 두 거대 기업이 같은 방향을 향한다는 신호 자체가 시장에 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엔비디아가 그리는 AI 생태계의 그림이 훨씬 선명해지는 계기였다.
국내 반도체·AI 업계가 촉각 세우는 이유
엔비디아 발표를 한국이 남 얘기로 볼 수 없는 건, 공급망이 직접 연결돼 있어서다. 이 발표 하나에 국내 기업 서너 곳의 수주 계획이 바뀐다.
- SK하이닉스·삼성전자: 고대역폭 메모리(HBM) 얘기다. 엔비디아가 새 AI 칩 아키텍처를 발표할 때마다 HBM 수요가 폭증해왔다. H100 사이클 때도 그랬고, B100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새로운 데이터센터 솔루션이 공개되면 국내 HBM 제조사들의 수주 경쟁이 다시 불붙는 구조다. 새로운 AI 칩의 성능과 가격 정책은 국내 기업들의 AI 경쟁력과 직결된다.
- 네이버·카카오: 자체 LLM 개발과 AI 서비스 확장을 위해 엔비디아 GPU 인프라를 쓴다. 새 칩의 성능과 가격 정책에 따라 이들의 인프라 비용이 직접 달라진다. 성능이 올라가면 같은 예산으로 처리량이 늘고, 가격 정책이 바뀌면 예산 계획 자체를 다시 짜야 한다. 선택지가 좁은 편이라, 이 발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 AI 스타트업·연구기관: 여기가 가장 직접적으로 타격이 온다. GPU 할당 하나에 사업 일정이 걸려 있는 경우가 많고, 새 플랫폼이 나오면 기존 CUDA 코드 호환성 문제도 따라온다. 마이그레이션 비용이 예상보다 크게 나오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엔비디아가 제시하는 AI 개발 환경의 변화는 국내 기술 생태계 전반으로 번져나간다.
결국 한국이 글로벌 AI 경쟁에서 어디쯤 서 있는지는 엔비디아 공급망 안에서의 위치로 상당 부분 설명된다. HBM 점유율이 높으면 유리하고, GPU 공급 우선순위에서 밀리면 불리하다. 이번 컴퓨텍스 키노트가 그 지형을 어떻게 바꿀지, 국내 업계 전체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출처: The Verg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