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가을, MIT 테크놀로지리뷰는 서른다섯 살이 안 된 혁신가 35명의 이름을 공개한다. 1999년부터 이어온 리스트다. 그런데 초창기 명단을 들여다보면 소름이 좀 돋는다. 구글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2002년에,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가 2007년에 여기 이름을 올렸으니까. 나중에서야 알게 되는 게 아니라, 뜨기 전부터 미리 찜해뒀던 셈이다. 예측이 이 정도로 잘 맞는 리스트도 드물다. TR35가 뭔지, 어떻게 뽑는지, 다른 상이랑 뭐가 다른지 하나씩 짚어본다.
TR35, 정확히 뭘 뽑는 상인가
TR35는 "Innovators Under 35"를 줄인 말이다. MIT가 내는 과학기술 매체, MIT 테크놀로지리뷰가 만들고 심사하는 어워드다. MIT 본부가 직접 나서는 게 아니라 매체 편집팀이 독자적으로 뽑는다는 점, 은근히 중요하다. 목적은 간단하다. 서른다섯 살이 되기 전에 이미 뭔가 해낸 사람을 찾아서 먼저 소개하는 것. 학위나 소속 같은 건 부차적이다. 이 사람이 실제로 뭘 만들었나, 그게 전부다.
선정 기준은 스펙이 아니라 결과물
지원 자격 자체는 단순하다. 심사 시점 기준 만 35세 미만이면 끝. 그런데 통과는 별개 문제다. 심사위원단은 전직 수상자와 업계 전문가로 짜이는데, 이들이 들여다보는 건 이력서 한 줄이 아니라 구체적인 결과물이다.
- 실제로 돌아가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었는가
- 논문이라면 그 분야 방법론 자체를 바꿀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가
- 회사를 세웠다면 그 기술이 시장에서 검증됐는가
명문대 박사 학위나 대기업 경력, 그것만으로는 어림없다. 실험실 문턱을 넘어 증명된 성과가 있어야 한다.
역대 수상자들, 지금은 뭘 하고 있나
리스트의 신뢰도는 결국 시간이 증명한다. 2002년 명단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이후 구글을 세계 최대 검색 기업으로 키웠다. 2013년 수상자 데미스 하사비스는 딥마인드를 이끌면서 알파고와 알파폴드를 세상에 내놨다. 2007년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을 20억 명이 쓰는 서비스로 키워냈고. 최근 명단으로 갈수록 생성형 AI, 신약 개발, 배터리 소재, 탄소 포집 쪽 창업자와 연구자가 부쩍 늘었다. 스무 해 넘게 쌓인 기록을 훑어보면, 이 리스트가 그냥 홍보용 트로피는 아니라는 게 드러난다.
5개 카테고리, 뭘 다루나
TR35는 매년 다섯 갈래로 나눠 후보를 뽑는다.
- AI: 모델 아키텍처, 학습 방법론, AI 응용 서비스
- 바이오·헬스: 신약, 유전자 치료, 진단 기술
- 기후·에너지: 배터리, 탄소 포집, 대체 에너지
- 컴퓨팅·하드웨어: 반도체, 양자컴퓨팅, 로보틱스
- 파이오니어: 위 네 갈래에 딱 안 들어맞는 실험적 시도
해마다 강세 분야는 조금씩 달라진다. 요즘은 AI와 기후 기술 후보가 눈에 띄게 많아졌는데, 실제 돈과 인재가 그쪽으로 쏠리는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비슷한 상들과 견줘보면
서른다섯 살 미만을 대상으로 한 리스트, TR35 말고도 몇 개 더 있다. 그중 포브스가 매년 내는 "30 Under 30"이 제일 유명한데, 방식은 꽤 다르다.
- 포브스 30 Under 30: 30세 미만, 카테고리당 30명씩 총 600명 규모. 대중적 인지도와 사업 성과를 같이 본다
- TR35: 35세 미만, 전체 35명뿐인 소수 정예. 과학기술적 성과와 실질 임팩트를 우선한다
- 다보스포럼 영글로벌리더: 나이 제한은 비슷하나 정치·사회 리더십 쪽에 더 가깝다
규모만 보면 포브스 쪽이 압도적으로 크고 대중적이다. TR35는 숫자는 적어도 심사가 까다로워서, 과학기술 업계 안에서는 더 무겁게 받아들여지는 편이다. 솔직히 여기서 갈린다. 인지도를 원하면 포브스, 업계 내 신뢰를 원하면 TR35다.
명단에 오르면 실제로 뭐가 바뀌나
수상 자체가 돈이나 지위를 주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이 명단에 목을 매는 이유, 따로 있다. 투자자들이 실사 과정에서 참고하는 신뢰 지표 중 하나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시리즈 A를 준비하는 창업자라면, TR35 수상 이력 한 줄이 초기 미팅 성사율을 눈에 띄게 끌어올린다. 학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채용이나 공동연구 제안을 받을 때 이 이력부터 먼저 눈에 들어온다는 얘기, 실제로 많이 듣는다. 결정적인 건 동문 네트워크다. 매년 뽑힌 35명은 이후에도 콘퍼런스나 비공개 모임에서 계속 마주치고, 그러다 협업 상대가 되는 경우가 잦다.
지원, 아니 추천받으려면
본인이 직접 지원서를 낼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지도교수나 회사 동료, 업계 전문가의 추천을 받아야 후보로 오른다. MIT 테크놀로지리뷰 공식 홈페이지에 매년 노미네이션 접수 페이지가 열리는데, 이 시기를 놓치면 다음 해까지 기다려야 한다. 준비할 게 있다면 이 정도부터 하면 된다.
- 본인이 만든 결과물의 임팩트를 숫자로 정리해두기 (사용자 수, 논문 인용, 매출, 특허 등)
- 업계 콘퍼런스 발표나 언론 인터뷰 이력 쌓아두기
- 추천인이 될 만한 사람과 평소에 연구·업무 성과를 공유해두기
심사위원이 짧은 시간 안에 후보를 판단해야 하는 만큼, 성과를 한눈에 보여줄 자료를 미리 준비해두는 쪽이 유리하다. 스무 해 넘게 쌓인 수상자 명단을 훑어보면, AI·바이오·기후 기술처럼 지금 산업을 이끄는 흐름이 몇 년 전 후보자 명단에서부터 이미 보였다는 걸 알 수 있다. 새로운 기술 흐름을 남들보다 먼저 감지하고 싶다면, 매년 발표되는 이 35명의 이름과 소속 분야를 눈여겨보는 것만으로도 꽤 쓸모 있는 참고자료가 된다.











